[교통인문코너-2]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거절과 선택의 교훈
[교통인문코너-2]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거절과 선택의 교훈
  • 황경수 제주대학교 교수
  • 승인 2024.01.24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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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A축이 있다. 제도권, 권력자, 혹은 거대자본의 축이다. 또 다른 B축으로는 비평 비판가, 이끌리는 사람, 고용자, 혹은 집행가 등이다. 이 두 축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이런 상황을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 있었다.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이다. 소설의 본질은 선택의 중요성에 있다고도 할 수 있고, 거절의 의미파악의 중요성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는 분량은 작지만 상징적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어서 읽기에 쉽지 않았다. 기고자는 한 번 읽고, 독서모임에서 토론을 하고, 정리하려고 하다가 제대로 못했다. 이 허먼 멜빌의 프레임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자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읽었다. 이젠 정리한다. 교통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그래도 관점을 넓힐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지않을까해서 정리하고자한다. 사실 해석은 수 만가지일 수 있으니...

이 소설이 저에게준 큰 교훈은 우리의 일상 삶에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절을 정확히 해낼 수 있다는 것에서 생각해보게 하는 점이다.  

 그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변호사 사무실에 바틀비가 채용된다. 바틀비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일을 잘하는 직원이었다. 1주일이 지나기 전에 바틀비는 변호사가 시키는 말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표현을 하기 시작한다. 몰래 변호사 사무실에 살면서도 그 표현을 계속한다. 변호사는 무한히 참는다. 이 때 ‘열등한 천재’가 되지 않기 위해 버럭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변호사는 계속 부드러운 제안을 한다. 설득도 한다. 협박은 아니지만 계속 그렇게 하면 생길 문제들을 이야기하여 부담을 주는 정도를 한다. 그래도 바틀비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일관한다. 사무실을 옮기고 변호사는 떠났어도 바틀비는 그대로 그 사무실에 남는다. 다시 찾은 변호사 바틀비에게 떠나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해도 그대로 남는다. 바틀비는 구치소에 잡혀갔다. 변호사가 찾아가서 고급인 사식을 넣어줘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맥락의 표현을 계속한다. 어느 날 사식을 가져갔는데 바틀비는 밖에 앉아서 자연스럽게 돌아가시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모두 끝났고, 소설 말미에 두 페이지에 걸쳐 바틀비를 소개한다. 필경사 바틀비는 필경사가 되기 전에 우편국에서 주소를 잃은 편지 등을 불태우는 사서(死書)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죽음에 이르는 편지를 태우는 느낌이 연결된다. 이 부분에서 그렇게 고민했던 두 축의 대비가 힘없이 무너진다. 이 또한 의도적 설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일이 다 그런거 아닌가 하는 비웃음이 있는 듯하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지점들을 교통과 관련하여 생각해본다.  

첫째, 서두에 이야기했던 A축인 변호사로 대변되는 제도권, 권력자, 혹은 거대자본의 축과 또 다른 B축으로 바틀비로 표현되는 비평 비판가, 이끌리는 사람, 고용자, 혹은 일을 맡아 집행하는 집행가 등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할까?하는 점이다. 각각의 위치에 있을 때 어떤 스텐스를 취해야 할까하는 점을 생각하게 했다. 사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바틀비의 입장이 아니라 변호사의 입장에서 바틀비를 바라보면 또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혹은 “바틀비는 이해가 되는데, 변호사가 이해가 안된다.”라는 분이 있고, “변호사를 이해할 수 있어야 소설이 보인다.”라는 등 비슷하면서도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표현을 한다. 그래서 유명한 소설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 하먼 멜빌 작가는 상징 표현을 잘 활용하는 작가라고 한다. 사회현상의 본질을 읽고, 그 내용을 여러 상징을 활용하여 글을 써내는 분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계속 자기의 생각이 어디로 흐르는지 성찰하며, 붙잡아 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간 스스로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교통관련한 다양한 정책들도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측면의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건설자본, 토목자본, 국가, 정책결정자로서의 학자와 고위공직자 등의 입장을 견지할 것인가? 아니면 고객, 수혜자, 토지제공자, 다양한 교통수단이용자,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 교통약자, 외국인이나 관광객 등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한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어떤 정부나 사업가의 제안에 대해서 자유의지적 부정을 할 수도 있음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에 대응하는 쪽에서는, 소설의 표현을 빌면 자기의 뜻에 맞지않다고 버럭하는‘열등한 천재’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저의 생각은 극에 있는 두 지점을 향하여 교통관련 모든 분들이 밖으로 행진하기 보다는 균형과 수렴을 위하여 가운데로 향하여 교집합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야기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둘째, 자유의지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이다. 이 소설은 일반의지(General will)와 자유의지(free will)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일반의지를 “사회의 대부분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의지”라고 한다면 자유의지는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하는 의지를 말한다”고 한다. 바틀비의 자유의지 표현(“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은 기고문을 쓰는 저에게도 가장 큰 쇼크 중 하나였다. 이 소설을 읽은 후로 큰 도움을 받아 저는 확실하게 저 만의 의지를 표현하는 소양이 생겼다. 예를 들어 대답하고 싶지 않거나 동감하고 싶지 않을 때는 “노코멘트!”라고 한다. “의견없습니다.”“저는 나중 전화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저는 공식적이지 않은 회의를 싫어합니다. 개별적으로 의견을 물어주시면 적극 응하겠습니다.”“해당 인터뷰는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저는 평가하는 자문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등등이다.   

셋째, 변호사의 끝없는 배려가 인상적이다. 우리 교통하는 사람들도 교통약자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고, 열악한 교통사업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의 배려 표현과 장면들을 나열해보고 싶다. 바틀비의 행동에 대해 참을성을 표현할 때는 “내 양심에 달콤한 양식이 될 것을 내 영혼에 비축하는 거지.”라고 표현한다. 긍정적이다. I message적 접근을 한다. 

바틀비를 이해하기 위해서 “선천적인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장애의 희생자”라고 규정하고, “고통받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이었으며, 나는 그의 영혼에 닿을 수 없었다.”라고 고통에 동정하기도 한다.

변호사가 바틀비와 둘만 있을 때도 참아내며 속으로 스스로 뇌까리는 표현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라는 성경의 구절이었다. 변호사는 ‘자비’에 대해서 “자비는 종종 대단히 현명하고 사려 깊은 행동 규범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자비심이 있는 사람에게 훌륭한 보호장치가 된다.”고 말한다. 자비는 사려깊은 행동규범으로 작용하며, 자비심이라는 행동규범은 훌륭한 보호장치로써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끝없이 자비를 베풀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변호사는 바틀비를 보호해야하는 것을 사명으로 해석하기도 하며, 구치소에서 가장 좋은 식사를 제공해주라고 지원하기도 한다. 결국 마지막 배려인 식사를 가져왔던 상황에서 바틀비는 떠났다. 소설의 끝까지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배려한다.    

넷째, 변호사의 성격을 통해 이 사회의 A축의 지향해야할 품성을 찾아보면 우리 교통하는 사람들이 참고해야할 지향을 알 수 있다. 소설속 곳곳에 있는 표현들이다.   - 변호사는 평탄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는 확신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 그런 맥락에서 마음평안을 잘 지켜내는 사람이었다.
 - 편안한 은신처가 주는 평화로움 속에서 생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 다른 사람들이 변호사를 대할 때 안심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 신중한 체계성을 가진 사람이며,
 -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하며,
 - 부하에게 꾸짖기도 싫어하는 사람이다.

일단 이러한 성격은 자기관리를 위한 측면에서도 그렇고, 조직의 리더라면 항시 지향하고 있어야할 성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허먼 멜빌의 논리를 어떻게 해석하든간에 이 소설을 읽고 한 참 지난 후에도 결론적으로 남는 단어는 하나 ‘선택권’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특히 거절하는 표현을 어떻게 잘 해내느냐에 관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거절해야 할 일이 많다. 맥락이 있는 거절, 그 거절을 어떻게 잘 해내느냐가 교통관련 전문성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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