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인문코너-4] 사랑으로 분리 극복, 모두를 사랑하는 교통으로!
[교통인문코너-4] 사랑으로 분리 극복, 모두를 사랑하는 교통으로!
  • 황경수 제주대학교 교수
  • 승인 2024.05.1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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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서 아담과 이브를 예로 들면서 분리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었고, 그들이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분리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 것인지를 배우지 못했다. 그 때문에 남남으로 남아 있으면서, 결합하지도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세계에서도 인간들이 분리된 채 사랑에 의해 다시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이 수치심이 죄책감과 불안감의 원천이 된다고 칭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의 이런 주장을 통해 우리는 교통에서 성찰해 보아야할 점들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교통수단간의 분리에 의한 경쟁, 갈등의 문제이다. 준공영이나 공영버스지원에 대한 택시업계의 견제, 대형 렌트카 회사들의 지역회사들과의 규칙미비에 따른 경쟁에 의한 갈등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거지 우선 주차에서 주차면에 대한 갈등, 보차분리에서 보행자와 차량운전자 간의 갈등, 자동차와 오픈형 교통수단인 이륜차 및 보행 등과의 갈등도 사례가 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분리심이 광기를 일으키고 사회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리에 의한 갈등의 문제를 사랑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에리히 프롬적 방식을 찾아보자. 에리히 프롬은 합일을 통해서 분리를 극복하고, 사랑으로 극복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인간은 자유를 주면 그 자유로부터도 다시 집단이나 한 개체에 몰입하려는 도피의식이 있다는 측면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장에서는 어떻게 합일을 유도하려는가에 대한 방법론을 살펴보고 교통측면에서의 교훈을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분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취적 합일’ 모습이다. 술과 쾌락에 의한 도취적 합일이다. 남과의 다르다는 데에서 오는 공포를 어떻게든 일시적으로 풀어보려는 모습이다. 술에 의해 분리의 공포를 풀려고하는 모습이 대표적 사례이다. 일시적이며, 결과적으로 오히려 분리감만을 더욱 키울 따름이다. 

교통측면에서 이러한 지향은 조심해야할 방법이다. 개인도 지향해야 할 일이지만 속도를 낼 수 있는 교통수단이 분노를 하고, 그 문제를 일시적 환각에 의해 자제시키는 모습과 같은 이 도취적 합일의 방법은 있을 수 없는 방법이다. 조직이나 기관이 그런 방법을 택하는 것도 당연문제가 될 것이다.  

둘째, 조금 다른 모습은 ‘집단과의 일치에 의한 합일’이다. ‘일치에 의한 합일’이라고도 한다. 집단의 관습, 관례, 신앙과의 일치에 합일을 기하면서 분리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이며, 친사회적 합일방법이긴 하나 일치하려는 주체인 구성원은 주도권을 갖지 못한다. 그가 하는 일이 조직에 의해 관리되는 문제를 지닐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 에리히 프롬은 바람직한 평등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절대적 평등이나 형평적 평등이 개념이 아니라 ‘기본권적 평등’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평등은 개인간의 차이를 존중해야 하며, 우리가 모두 일체라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우리는 각기 독특한 실재이고 각기 하나의 조화로운 우주라는 것도 사실임을 의미하고 있다.”평등에 따르면 한 인간이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분리가 두려워서 집단에 합일을 위한 지향을 하더라도 평등과 인권적 사랑의 개념이 있어야 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개념에서 저자는 교통시스템의 규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을 도구화하거나 인권적 문제를 내재한다면 그 문제를 평등의 차원에서 성찰해보아야 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교통약자에 대한 접근, 경제적 불평등이 교통서비스의 차이로 결과화 되지 못하도록하는 차원의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셋째, 예술가와 직공 등이 창조적 활동을 통해서 분리에서 극복하고, 창조적 활동을 통한 합일을 이루는 경우이다. 창조적 작업을 하는 사람은 자기와는 다른 외부세계의 자료, 대상과 결합하여 작업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분리를 극복한다는 측면이다. 예를 들어 화가가 그림을 그리든 조각 작품을 하든 화가는 대상과 하나가 되고 그 화가는 인간으로서 창조과정에서 세계와 결합한다는 개념이다. 다만 컨베어벨트의 노동자들은 노동의 결과로서 결합적 결과물이 남지 않아서 오히려 노동자는 기계 또는 관료조직의 부속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교통에서는 자동차와 운전자의 활동을 통한 서비스 생산과정에서 합일을 느낀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운송수단간에도 서로 협력적 운행으로 그 결과물인 서비스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을 성찰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운전자분들에 대한 분리극복 과정에 많은 도움과 배려를 해야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운송수단간에도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과정에서 분리를 극복하고 서로 협력함을 느낄 수 있도록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도로현장에서 보복운전을 하다가 사고나는 현장을 우려한다. 분리에 의한 폐해라 할 수 있다. 자전거를 포함한 전기이륜차, 일반 이륜차 운전자에 대해서도 분리로부터 오는 분노를 느끼지 않도록 자동차운전자들이 배려를 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 

넷째, 대인간적 결합, 다른 사람과의 융합의 달성, 곧 ‘사랑’에 의한 합일이 있다. 에리히 프롬은 앞의 두 경우의 합일에 대해 조금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 도취적 융합에 의한 합일은 일시적이며, 오히려 개인과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다. 집단과의 일치에 의한 합일의 경우는 사이비 합일이라고 평가한다. 진정한 합일에 이르지 못하고, 눈치보고, 만족하지는 못하면서 억지적 합일의 노력에 의해 분리감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인간적 융합에 의한 합일로 가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대인간적 융합의 욕망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갈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욕망은 우리 인간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열정이고, 인류를, 집단을, 가족을, 사회를 결합시키는 힘이라고 보고 있다. 이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발광 또는 파괴가 일어난다고 한다. 타인에 대한 파괴와 자신에 대한 파괴 모두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의 사례로 공서적(共棲的) 합일과 그에 따른 부정성의 치료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공서적 합일이라함은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에 의한 합일이다. 이 때 우리가 아는 ‘피학대 음란증’이라는 메조키즘(mesochism)과 ‘가학성 음란증’이라는 쎄디즘(sadism)에 대한 고려이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지만 분리에 의한 문제가 또한 가장 심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전제하에 사랑에 의한 합일에 의해서 분리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 대안으로서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 있어서의 합일인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하는 합일을 강조한다. 

교통에서의 사랑에 의한 합일은 어느 정도일까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교통약자에 대한 사랑, 노동자에 대한 사랑,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는 오지의 마을 사람들에 대한 사랑,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 나이드신 어르신에 대한 사랑, 초행자에 대한 배려, 교통분야에서의 외국인에 대한 사랑, 보행자에 대한 사랑,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분에 대한 사랑, 농촌지역에서의 농사를 짓는 일 때문에 교통과 만날 수 밖에 없는 농부들에 대한 사랑 등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교통전문가들이 항시 이러한 사랑을 성찰하면 같은 현상에 대해 임하는 자세에 달라질 것이다. 어떤 계획을 수립할 경우에도 사랑에 의한 합일은 모든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신을 담을 수 있다.  

제주도의 교통은 분리에서 사랑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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